No. 110  동백섬 예찬

 해운대 ‘동백섬’은 부산의 자랑 중 하나로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5년 APEC 이전에는 화장 끼 없는 순박한 시골 처녀의 모습으로 흰 무명 저고리를 입고 꼭꼭 숨어있었다면, 이후에는 혼인을 위해 다듬고 화장한 도시의 신부로서 화려한 드레스 입고 신랑을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동백섬의 APEC '누리마루'(세상의 정상)가 혼인예식장 이라면, 주변의 하객들은 해운대 바다, 수영만 초고층 빌딩숲, 광안대교 그리고 스카이라인 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조선호텔을 지나 시계방향으로 동백섬을 산책 하겠습니다. 섬 한 바퀴 유유자적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길은 약간 폭신한 느낌을 주는 재질로 깔았고 심호흡으로 신선한 바다 공기를 깊숙이 마시니 가슴이 시원하고 머리가 맑아집니다. 왼쪽바닷가 목재 테크로 만든 산책로 계단으로 따라 내려가면 통로가 오밀조밀 이어집니다. 전에는 갯바위를 위험스럽게 걸었지만 지금은 아주 편하게 해변을 산책하도록 했습니다. 바로 앞은 푸른 파도가 쉴 사이 없이 갯바위를 치며 하얀 물거품을 일으킵니다. 하늘에는 갈매기가 멋진 비행을 하며 왼쪽으로 인어상이 다소 곳이 앉아있고 9시 방향으로 드넓은 해운대 백사장으로 이어집니다. 12시 방향 멀리 유람선 선착장 미포 항, 바로 위는 운무에 쌓인 달맞이 고개가 공중정원으로 떠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등대가 나옵니다. 앞이 탁 트인 바다, 마치 타이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뱃머리에 선 기분입니다. 오래 전에 따듯하게 데워진 갯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고 책을 읽고 사색을 하다 누워 잠이 들은 추억이 있는데, 그 새 부산에 온지 십년이 지나갔습니다. 또 얼마 전, 아주 청명한 날에 여기 등대 앞에서 현해탄 너머 대마도를 뚜렷하게 본 적이 있는데 대마도가 섬 하나 달랑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마치 육지처럼 길게 누워 있었습니다.

동백섬 중앙에는 최치원 선생님이 두 눈 부릅뜨고 왜적을 굽어 감시하기에 선조님께 감사드립니다. 두시 방향을 바라보면 멀리 ‘이기대’가 보입니다. 그곳 역시 갯바위로 공룡 발자국이 선명한 처녀지입니다. 그리고 그 앞쪽으로 부산의 상징 ‘오륙 도’가 육지와 이어질듯 말듯 운무 속에 아스라 히 떠있고 그 너머는 부산항과 영도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시아 대륙 그리고 한반도를 굽이 쳐 내려오다 문득 멈춘 곳이 바로 부산입니다.

등대 앞에는 강태공들이 한가롭게 낚시를 하고 있 고, 세 시 방향 바로 앞에 누리마루가 멀리 광안대교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누리마루를 지나면 산책길은 반환점이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동백꽃이 유난히 군락을 이루며 붉게 타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동백꽃은 겨울에 피고 봄에 지는데 가장 인상 깊은 모습은 붉은 꽃이 하얀 백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과 멀리 유람선에서 들려오는 조용필의 “꽃 피는 동백 섬”의 어울림 그리고 눈 감으면 동백기름 곱게 단장한 여인의 향내를 느낍니다.